From: Hong S Kim
Sent: February 26, 2015
Subject: 길-2

1. 신은 정말 존재하는가?
나는 소위 모태교인으로써 1973년 미국으로 이민 오기까지는 단 한 번도 하나님의 존재나 성경이 사실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진 적이 없었습니다.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죽은 후에 천국에 가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며 열심히 교회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질병의 60%가 정신으로부터 기인 한다는 것을 의과대학시절 배웠었지만 실지 내과 의사로써 일선에서 환자 를 대하고 보니 훨씬 더 많은 80% 쯤은 되리라는 생각을 늘 가지게 되어 정신과에 관심을 가지면서 정신과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신 과를 공부하면서부터 기독교에서 행해지고 있는 여러 가지 모순점들이 하나씩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기독교에 대한 회의가 싹트기 시작 하였습니다.

‘신’이라고 하는 것은 불안 공포 같은 정신문제를 해결하는 한 방책 으로‘절대자’의 존재설정이 필요하여 인간이 고안하여 만들어낸 작품 이라는 심리학의 이론은 아무 거부감 없이 인정 하면서도 다른 모든 종교 들은 그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지만 기독교는 예외라고 하며 기독교를 변호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신과에 더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또 교회들에서 행해지고 있는 모순된 행태들을 보면 볼수록 기독교도 그들 종교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사상이 내 마음속에 서서히 자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시골 할머니가 새벽마다 찬물 떠놓고 뒷마당에서 자식을 위해 두 손 비비며 비는 것은 미신이라 하여 경멸의 대상이 되고 도시 할머니가 새벽마다 교회 에서 자식 위해 두 손 모으고 기도하는 것은 참 종교라 하여 존경의 대상이 됩니다.  빌고 있는 모습이나 그들의 교육 정도 등 외형적 차이만이 있을 뿐 내면 심리상태에는 조금도 차이가 없는데 왜 그렇게 되었을까 하고 그 이유를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세상 모든 다른 면에서와 마찬가지로 힘이 강한 쪽은 진리로 군림하고 약한 쪽은 밀리는 힘의 원리로 밖에 설명이 되지 않았습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하고 크게 소리 지르며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면 체면이나 창피를 초월한 큰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 생각 했었는데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분석 되어지는 것은 믿는다는 것을 강조하면 할수록 사실은 속마음에는 믿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전쟁 통에 잃어버린 다섯 살짜리 아들을 십 년 만에 그 어머니가 찾아내 같이 살고 있습니다. 그 아들이 자기를 만날 때마다‘어머니 당신이 내 어머니인 것을 믿습니다, 확실히 믿습니다.’라며 믿는다는 것을 거듭거듭 강조한다면 심리학이 무엇인지도 전연 모르는 무식한 시골 여인이라 할지 라도‘아, 이 애가 나를 어머니로 믿지 못하고 있구나’하고 걱정할 수밖에 없는 간단한 현상을 기독교계에서는 모르고 있는 것으로 생각 되었습니다.

어느 날 교회에서 통성 기도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우연히 눈을 뜨고 교인들이 하나님을 부르짖으며 열심히 기도하는 인상 찌푸린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이 정말로 존재할까 로부터 시작하여 있다면 어디에 있으며 또 어떻게 생겼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기도하는 저 사람들이 다 각기 자기상상으로 만든 모습을 머리에 떠올리며 그를 찾으려고 안간힘 쓰고 있음을 생각한 것입니다. 초등학교 교육도 받지 못한 시골 할머니가 눈을 감으며 떠올리는‘하나님’과 물리학 박사 교수님이 상상하고 있는 ‘하나님’이 과연 같은 대상일까? 재벌 집 아들이 부르는 하나님과 평생 을 고생하며 자란 고아원출신이 부르고 있는 하나님, 경건한 천주교인이 상상하는 하나님과 성령 받았다며 양팔 쳐들고 발광하듯 날뛰는 다른 교파 에서 부르짖는 하나님이 과연 같은 대상일까?

아무리 분석해도‘하나님’하는 단어만 같을 뿐 분명 다른 대상이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순간,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내가 부르는 그 대상은 참 하나님일까 하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되었을 때 도저히 자신이 없었습니다. 깊이 생각한다고 답이 나올 것 같지도 않아 더 이상의 추구는 포기한 채 다른 종교보다는 덜 미신 적이고 더 현대적이라는 차이일 뿐 기독교도 그들 종교들 중 하나라는 결론 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믿음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안고 상담을 요청할 때면 믿을 수 없는 사실을‘무조건 믿는 것이 믿음’이라는 답을 내놓는 목사님 들을 보아온 터라 답이 빤할 그들과는 상담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무조건 믿는다’하는 것은 그 말 자체가 논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 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믿을만한 조건들이 충분히 나열되고 내 마음속에 그것들이 납득 되어졌을 때 저절로 생겨지는‘수동적’인 현상 이지 내가‘믿습니다’하며‘능동적’으로 억지로 다짐하여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평소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능동적으로‘믿습니다’ 하는 것을 분석하면 그것은‘믿음’이 아니고‘믿으려고 노력하는’ 현상 인 것입니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그때 기독교라 이름하는‘종교’와‘성경’이 반드시 일치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기독교계의 불합리를 보는 대신 성경으로 돌아갔었더라면 갈등의 기간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전에도 성경에 맞지 않는 기독교계의 불합리한 것들을 늘 인식하고는 있었습니다.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되어 있는데 매주 주보에 헌금자의 명단과 액 수를 발표하는 문제, 금식이나 기도할 때 사람에게 보이지 않게 은밀하게 하고 길게 말을 늘어놓지 말라고 되어 있는데 오히려 그 반대를 권장 하는 문제 등등 성경과 다른 정도가 아닌 오히려 정 반대 되는 것들이 오히려 정상인 것으로 인정을 받는 것들에 대한 거부감을 마음속에 늘 가지고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비판하지 말라”하는 말씀 때문에 불만을 감히 밖으로 표출하지는 못하고 억눌러오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베뢰아 사람들은...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search, examine) 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들이 많고...”(행17:11) 라고 되어있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그냥 덮어둘 것이 아니고 더 찾고 연구를 함으로 믿어지도록 되는 것이지 믿어지지 않는 것을 억지로 믿으려 하는 것은 오히려 미신적이요 신사적인 태도가 아니라는 것을 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2. 신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는 과학적 현상.
이런 갈등을 가지고 있는 중에서도 우주의 운행이나 자연과학 특히 인체의 신비를 볼 때 절대자의 존재는 필연적이라는 생각은 늘 해오고 있었습니다.
인류역사상 최고의 과학자로 인정받는 아인슈타인 박사는‘우주의 창조나 모든 과학의 법칙들은 그 맨 위에 절대자가 존재하고 있다는 가정 없이는 설명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분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우리의 작은 머리에 비해 그분은 너무나 크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마치 아주 작은 어린아이가 각종 외국어로 쓰여 진 책들이 가득히 진열되어 있는 엄청나게 큰 도서관에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 어린애는 누군가가 그 책들을 썼을 것이라는 정도는 압니다. 하지만 어떻게 썼는지 라든지 거기 쓰여 진 언어들은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그 애는 그 책들이 어떤 알 수 없는 순서에 의해 분류되고 정돈된 것은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습니다만 그 자세한 것은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 우주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신비스럽게 정돈 되어있고 어떤 보이지 않는 법칙에 순종하고 있음을 봅니다. 하지만 그 법칙들을 희미 하게만 알 뿐입니다.’(The Spirit manifest in the laws of the universe and God reveals Himself in the harmony of all that exists. The harmony and beauty of the mind of God as it was expressed in the creation of the universe and its laws.)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신의 존재를 믿느냐고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인데 그분은 성경의 하나님을 믿는 분은 아닌 걸로 알고 있지만“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 하는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롬1:20)하신 성경이 얼마나 정확한 말씀인가를 생각게 하는 적절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진화론’이라는 학설이 생겨나 우리의 머리를 혼미케 만들고 있습니다. 컴퓨터의 발달로 과학적 또 수학적 계산에 위배 된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는데도 아직도 버젓이‘과학적’이라는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습니다. 진화론 자들은 생명이라는 것이 물질로부터 우연히(by chance) 시작 되었고 또 우연히 진화 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확률적으로 계산하면 무생물이 수없이 많은 단계의 화학반응을 거쳐‘우연히’DNA 하나로 진화 하려면 5경년(5 million billion year)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메바와 같은 단 세포에서 인간의 세포와 같은 정교한 고등 세포까지로 진화 할 수 있는 가능성은 고철을 쌓아둔 쓰레기 장에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불어서 쓰레기 고철들이 하늘에 올라갔다가 떨어지면서 이것저것들이‘우연히’연결되어서 정교한 747 점보기가 되 는 확률이라고 합니다. 과학자들은 우주생성의 기원을 150억년으로 보는 데 수학적으로 이 기간 동안에 그런‘우연’이 일어날 수 있는 확률은 전무 합니다.

우리의 몸은 약 60-100조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것은 1초에 한 개씩 센다면 300만년이 걸리는 엄청난 숫자입니다.  세포마다 그 속에 핵(nucleus)이 있고 핵 속에는 유전인자인 DNA가 사다리 모양으로 꼬여 있는데 이것을 전부 펴면 태양까지 700번을 왕복하는 기리 입니다. 이 DNA를 구성하는 amino acid isomers 에는 D-form과 L-form이 있는데 이 연결선 상에 D-form이 섞이면 세포가 파괴(toxic)되어 살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런데 신비롭게도 그 긴 DNA chain은 전부가 L-amino acid isomer만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진화론자의 주장은 진화라는 것은 주사위를 던지는‘무작위’(natural selection) 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들의 비율은 50:50 여야 만 됩니다.  그런데100%가 L-form 으로만 연결 되어 있다는 것은 intelligent designer(어느 누군가의‘의도’)에 의하지 않고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컴퓨터로‘T'자를 찍으면 그것이 서든지 눕던지 두 가지 중 하나가 되도록 조작하여 놓고 무작위로 1초에 5,000자를 찍어서 겨우 한 페이지 5,000자가 전부 선 방향으로 되게 하는 데도 100 억년이 걸린다는 계산인데 태양을 700번 왕래하는 기리 에서 일어나는 이 일들이 ‘우연히’  ‘저절로’그렇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은 과학적 계산으로 전무합니다.
더운 지역에 사는 사람은 피부가 검게 된다든지 필요 없는 장기들은 점점 퇴화되고 필요한 것들은 점점 발전하는 것 등 생물의 같은species(종) 내에서는 환경에 적응하여 생존하기 위해서micro-evolution(소진화)이 라는 진화과정이 지금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으며 이것은 과학적으로 확실한 현상 입니다.  
하지만 사람, 원숭이, 개미 등과 같이 전연 다른 종이 자신과 전연 다른 종으로 진화한다는macro-evolution (대진화)은 과학적으로는 고사하고 수학 계산상으로도 가능성이 전연 없는 데도 micro-evolution 이론이 macro-evolution에까지 적용되는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에 모든 진화 론이 과학적일 것이라는 오해와 혼돈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1억 광년 상공 인공위성에서 쇠 조각들을 밖으로 뿌렸더니 그것들이 떨어 지면서 이것저것들이‘우연히’들어 맞은 결과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컴퓨 터가 되었고 다른 편 창문으로 던진 것은 smart phone이 되어 지금 내 전화기에 입력 되어 있는 전화 번호까지다 입력 되었다, 수 십 만개 의 활자 무더기들을 인공위성 상에서 뿌렸더니 그것들이 떨어지면서 이것 저 것 ‘우연히’배열 되어‘성경책’이라는 것이 만들어졌다, 목화를 뿌렸더니 내려오는1억년 동안에 실이 되고 배로 짜여지고 물감이 들여지고 글자 까지 박아져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이 되었다는 이론을 확실히 믿는다고 계속 주장 하고 다닌다면 나를 정신병원에 강제입원 시킬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계산한다면 무생물이나 아메바 같은 단세포가 진화 되여 사람의 세포 하나가 될 가능성 보다 몇 억만 배 더 많고 쉬운데도 말입니다.

세포내부를 명확히 볼 수 없었던 옛날에 화석이나 외부 형태만을 관찰한 원시적 방법으로 추정하여 1859년에 발표하여 진화론의 골격이 되었던 Charles Darwin의‘The origin of Species’란 논문을 의사인 내가 만약 지금 미국에 있는 어느 medical journal에 발표하려 한다면 받아줄 잡지회사도 찾을 수 없으려니와 그것이 진리라고 계속 주장하고 다닌다면 나는 미국 의학협회에 엉터리 의사로 보고 되어 면허박탈을 당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조금이라도 과학적 두뇌와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모든 것들이 나 우주만물의 현상들이‘저절로’‘우연히’라고 한다면 말도 되지 않는 무책임한 미신적 사상이라는 것을 가장 많이 주장해야 되는 것이련만 아이 러니 하게도 소위 과학자라는 그 사람들이 오히려 그것을 주장하도록 되어 진 것이 이상한 현상이지 않습니까?

전연 과학적 이지도 않은 이런‘미신’사상이 온 세상사람들 특히 과학자 들에 의해 Bible 처럼 모셔지고 있는 것은‘진화론’이라는 것이 사람 들의 마음을 성경으로부터 멀어 지게 하려는 어느 영의 계획에 의해 만들 어진‘과학’이라는 가면을 쓴 거대한‘종교’세력이기 때문이라고 생각 합니다.

성경에 의하면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인류의 역사는 아무리 계산해도 6,000년 정도를 넘지 않습니다.
이 지구상의 인구가 첫 10억이 되었던 것이 1800년이었는데 인류학자 들의 이론대로라면 이 10억이 되는 데는 몇 백 만년이 걸린 것입니다.
그리고는10억이 또 증가하여20억이 된 것이1930년이었기 때문에 130년이 걸린 것이요, 30억이 된 것이1960년이었기 때문에 30년 걸렸고, 40억명이 된 것이1975년이어서 15년, 50억이 1987 년이 어서 12년, 그리고는 11년 만인 1998년에 60억이 된 것 입니다.
이런 추세를 컴퓨터로 역 계산 해 보면, 중간 중간 전쟁이나 질병으로 대량 이 죽었을 가능성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최초의 인간은 몇 천년 전이지 소위 인류학자나 고고학자들의 주장대로 몇 백 만년이나 몇 억년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대 그들은 발굴된 두개골을 분석하여 인류의 시작을 600만년 전 이라고 추정 합니다.  그리고 400만년 전부터 직립 보행을 시행 했는데 그 중12종 이상 되는 조상들은 모두 멸종 하였고, 20만년 전에 시작한 Homo sapiens가 현생 인류의 조상이라고 합니다. 
인류역사를 이렇게 길게 보는 것은 인류가 원숭이로부터 진화되었을 것이 라는 가설을 정해 놓고 거기에 모든 자료들을 적용시켰기 때문인데 그것 은‘가설이 잘 못 설정되었다면 결과는 다 잘못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학 공식의 적용을 받아야 됩니다.  발굴된 유골이나 화석들은 육체적으로 사람 과 비슷한 원숭이 종류의 것들인데 사람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했을 것이 라는 가설을 적용시키기 때문에 그런 결론이 도출되는 것 입니다.

창세기의 창조 과정을 보면 사람이 맨 마지막에 창조 되었고 짐승들은 그 훨씬 이전에 창조되었기 때문에 사실 원숭이는 몇 백 만 년 전에 창조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연구논문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DNA 검사를 해보면 원숭이와 사람은 거의 99% 정도가 일치한다고 합니다. 사람과 닭과도 50% 정도 그리고 심지어 지렁이와도 75% 정도가 일치 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육체 자체는 흙의 원소로 만들어져 있어서 사람이나 짐승 이나 크게 다를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짐승을 치료하는 수의사도 법적으로 허용만 된다면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가 하는 일들을 거의 다 해낼 수 있고 거의 모든 약품을 사람과 짐승이 같이 공용할 수가 있는 것도 영을 제외한 육체부분은 사람이나 짐승이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우주와 자연의 법칙을 과학적으로 찾아낼 수는 있지만 그 것이 처음에 어떻게 해서‘시작’(switch on) 되었느냐 하는 것은 절대자가 존재한다는 가설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아인슈타인의 견해나 생물체의 육체부분의 진화는 이론상 혹 가능하다 할지라도‘생명’자체를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설명은 intelligent designer(창조자)가 존재한다는 전제가 없이는 불가능 합니다.

어떻게 해서 비가 내리는가 하는 의문에 대해 옛날 주일학교에 다니던 꼬마 시절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말을 믿었었습니다.  그러다가 초등 학교에서 과학을 배우고 보니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고 수증기가 증발 하 였다가 다시 내려오는 자연 법칙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른이 되어 사물의 이치를 더욱 깊이 알고 난 후에는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다시 알게 됩니다.  과학발전이라고 하는 것은 이미 그것을 만들어낸 조물 주의 원리를 하나씩 발견해 나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발견하는 데는 어린아이와 같이 단순하든지 아니면 정말 연구를 많이 하든지 해야지 어설픈 지식을 가지고 이론을 주장하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무지를 나타낼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불과 몇 십 년 전 우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느냐, 보여주면 믿겠다고 대들을 때 어머니의 사랑은 눈에 보여서 믿느냐고 응수하는 정도로 원시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육안으로 보이지 않으니까 믿지 못하겠다는 그런 식의 항의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스스로가 자기 무식을 폭로하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지금은 TV, 라디오, 컴퓨터, 전화기 등 기계만 장치해 놓으면 세계 수 만 곳의 방송, 그림, 글자, 소리, 영상 등 모든 것을 방안에서 잡을 수가 있는데 그것은 육안으로만 안 보일 뿐 실지는 이 방안에 오만 가지 그런 것들이 가득 차 있다는 증거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시14:1)  나의 과학적인 두뇌나 지식이 아인슈타인 보다는 못하다는 것을 자인할 찐데 교만한 마음속 논쟁은 포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계속 귀를 기울이 시기를 바랍니다.

기독교에 대한 회의 속에서도 이처럼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 습니다. 하지만 내가 인정 하는 그 신이 기독교에서 얘기하는 그 하나님 인가 하는 문제는 아직도 남아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