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ng S Kim
Sent: February 25, 2015
Subject: 길-1


지금 내가 가고 있는 이 길 확실한 길인가...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마7:21, 눅13:24)

이 글은 재미도 없고 지루합니다. 재미를 찾으시는 분은 읽지 마십시오. 시간낭비 입니 다.  지옥의 존재를 알고 싶은 분이나 그 곳을 꼭 면하고 싶은 분 만 읽으십시오.
또 성경기준에 배치되는 것은 타협함 없이 그대로 비판하고 있기 때문에 원본인 성경 보다 전통이나 특정교파의 교리를 더 중요시하는 분이나 종교성이 많은 분의 마음에는 걸림이 될 수도 있음을 미리 말씀 드립니다.       (2007년)      김 홍 식, M.D.

 

                 Back to the Bible
목 차


* 서문
* 총론
* 성경으로 돌아가자(Back to the Bible).
1. 신은 정말로 존재하는가?
2. 신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는 과학적 현상.
3. 하나님의 말씀임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4. 신화 같은 창세기도 사실이란 말인가?
5. 유대인을 선민으로 택한 목적이 무엇인가?
6. 이스라엘 역사의 개요.
7. 성경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유대인의 고난.
8. 선민이라는데 왜 그런 고난을 당했나?
9. 예언대로 되고 있는 이스라엘의 회복.
10. 회복 후엔 세계를 지배하게 되리라.
11. 이스라엘의 회복 다음은 휴거.
12. 휴거는 교회시대의 끝, 유대인 구원의 시작.
13. 7년 대 환란과 적그리스도의 출현.
14. 예수님의 재림, 천년 왕국 그리고 최후심판.
15. 세계 역사의 예언.
16. 이스라엘 역사의 예언(70이레).
17. 지옥과 두 개의 갈림길.
18. 이것은 공교히 만든 이야기가 아니다.
19. 개인 인생의 여정은?
20. 교회사의 개요.
21. 한국의 기독교.
22. 선악과를 왜 만드셨나?
23. 죄의 시작.
24. 인간의 근본 문제= 죄.
25. 본질이 죄인으로 태어나다.
26. 율법을 주신 목적은 무엇인가?
27. 죄의 기준은?
28. 죄의 구체적인 목록.
29. 가장 큰 죄.
30. 종교행위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31.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32. 내 생각은 항상 옳은가?
33.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자만을 구원하심.
34. 구원의 계획.
35. 우리의 운명은‘한 사람’에 의해 결정된다.
36. 어느 청년이 자기가 메시아라고 주장 하는데.
37. 십자가의 예언.
38. 그 선지자라.
39. 기적을 베푸신 목적.
40. 삼위일체.
41. 당신은 구원을 받으셨습니까?
42. 해결= 탄생으로, 탄생은 말씀 듣고 믿음으로.
43. 머리로가 아닌 마음에 경험 되어진 믿음.
44. 내가 믿는 믿음(영접)이 아닌 믿어진 믿음.
45. 피가 생명이다.
46 죄의 해결은 오로지 피 로만.
47. 그림자인 짐승의 피.
48. 실체인 예수의 피.
49. 단번에 그리고 영원히.
50. 대신 담당하셨으니.
51. 구원은 옷으로 덮어버리는 것.
52. 구원은 공짜로.
53. 아무 조건도 요구하지 않는 하나님의 초청.
54. 내가 곧 길이요.
55. 이제 죄는 ‘믿지 않는 죄’ 단 한 가지뿐.
56. 율법은 예수께서 오실 때 까지만.
57. 율법은 유대인에게만.
58. 구원받았으니 이제 마음대로 죄를 지으리오.
59. 그래도 거절하면.
60. 성경으로 돌아가자.
* E-mail: hongskimmd@gmail.com

 

*서  문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풀어야 될 의문과 해결해야 될 문제들을 계속 만나게 됩니다. 그것들 중 그냥 넘긴다 해도 별 일 없거나 약간의 손해만을 당할 뿐인 문제들도 많지만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될 문제도 있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하는 말씀대로 세상에서 소원 했던 모든 것들을 다 성취했고 또 거액의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통보를 아침 에 받고는 날듯이 기뻐했다 해도 그날 오후에 말기 암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면 얻었던 모든 것들이 다 무의미하게 되어버릴 수도 있듯이 이 한 가지를 잃는다면 인생의 모든 것이 헛것이 되어버릴 한‘문제’가 있습 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살고 있을 뿐이지 이것은 누구나 예외 없이 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문제’인데“만민들아 이를 들으라 세상의 거민들아 귀를 기울이라 귀천 빈부를 물론하고 다 들을 지어다”(시49:1,2)하는 말씀처럼 세상사람 모두에게 해당 되는 것이지 어느 특종 종교만이 그것을 논할 특권을 가진 문제가 아닙니다. 아마도 석가 모니나 공자님이 처음부터 불교 유교 하는 종교를 만들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런 인생의‘문제’와 의문들을 깊이 고민하면서 따르는 사람들과 대화 하며 가르쳤던 것들을 후 대 사람들이 정리하여 발전된 것이 종국엔 그런 이름의 종교로 되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일부 사람들이‘기독교’라는 울타리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고는‘예수’ 나‘하나님’을 자기네의 전유물인양 제한시켜버린 것이지 사실 예수라는 분은 특정 종교를 만들어 그 울타리 안에서 그 종교의 교주 노릇을 하려고 오신 분이 아닙니다. 어느 종교에 속해있던 또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던 상관없이 인류 전체가 가지고 있는 이‘문제’의 해결을 위해 보내심을 받 은 분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누구나가 똑같이 공유하는 우주를 만드셨고 누구에게나 똑같이 비나 공기를 주신, 그래서 만민이 누구나가 똑 같이 공유할 권리를 가진 창조주이신데 일부 편협한 사람들에 의해‘기독교’만의 하나님으로 축소 전락 되어버린 경향이 있다고 봅니다.
불경스럽게도 예수를 세계 사대 성인들 중 한 사람으로 전락 시킨 장본인들 역시 따지고 보면 이교도이기보다는 기독교도들의 책임이 더 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물론 그 분을 높이려는 의도에서이었겠지만 결과 적으로는 예수도 위대한‘사람’들 중 하나로 격하시켜버린 것입니다.

종교 같은 것에 별 관심이 없거나 성경을 믿지 못하겠다고 하는 분이라도 이 글을 읽기 전 이런 논리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어떤 것이‘사실’이라면 내가 믿고 안 믿고 와는 아무 상관없이 어느 경우나 항상‘사실’로 존재할 것입니다.  태평양 가운데 하와이라는 섬이 있다는 것을 나는 절대로 믿지 않는다고 아무리 강하게 부인한다 해도 이미 ‘사실’로 존재하고 있는 하와이 섬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내가 아무리 지옥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해도 만약 성경이 ‘사실’이라면“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고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는 불과 유황 못”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지옥도‘사실’로 존재하는 것이요 성경대로‘구원’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 한 내가 그곳에 가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도‘사실’이라는 논리를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성경이 거짓이라면 오히려 별 문제가 없으려니와 만일 사실이라면 이처럼 나의 운명에는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기 때문에 사실 여부를 반드 시 따지고 넘어가야 될 것입니다.

이런 계산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대략 8시간 정도의 시간을 투자하여 이 글을 읽으면 성경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스스로가 판단할 수 있게 될 것입 니다.  그런데 어느 한 사람은 80년 긴 인생여정 중 이 8시간을 투자한 결 과 성경이 사실인 것이 믿어지게 되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죽은 후에 보았더니 그것이 사실이 아니어서 지옥이라는 곳이 없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이 손해 본 것은 단지 8시간의 시간 낭비뿐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다른 한 사람은 8시간의 시간 투자가 싫어 읽기를 거절하였었는데 죽은 후에 보니 성경이 사실이어서 지옥에 가게 되었다고 합시다. 이 경우 이 사람이 손해 본 것은“풀무 불에 던져 넣어져 슬피 울며 이를 갈며”후회해도 이젠 돌이킬 수가 없도록 되어져 버린 자신의 영원한 운명인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8시간의 지루함’과‘영원한 지옥 불’과의 비중을 저울 질해 보시고 이중 어느 것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한 투자인가 계산하는 지혜를 사용하시기를 간절히 권합니다.

‘경고합니다. 살고 싶거든 이 도시에서 12 마일 밖으로 나가십시오.’ 하는 삐라가 1945년 8월 3일 히로시마에 뿌려졌습니다. 그리고 8월 6일에 원자탄이 투하되었습니다. 그것을 믿었던 사람들은 살았고 믿지 않았던 20만 명은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어버렸던 사건을 생각하십시오.

이미 교회를 다니고 있으면서 지옥의 존재를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이라 할지라도 내가 그것을‘참으로’믿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십시오. 사랑하는 가족 중 한 사람이 실수로 죄를 지었는데 잘못될 경우는 3년의 징역 판결 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면하게 해주려고 온갖 힘을 다 쏟는 것이 정상적인 태도일 것입니다. 내 자녀들 학교 진학 문제에는 그토 록 신경을 쓰면서도 그들이 혹 지옥에 가게 되지 않을까 하는 문제에 대해 서는 심각한 관심이 없다면 당신의 마음 깊숙이 에는 지옥의 존재를 믿고 있는 것이 아님을 스스로 진단해야 합니다.

외국 여행을 하려 할 때 비행장에 가기 전 여권이 있는지를 확인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없이는 그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그 나라의 법을 확실히 믿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천국 행 비행기를 타려는 시점인데도 천국여권소지 여부를 확인하지 않는 다면 그것은“진실로 진실 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 니라”라고 분명하게 기록 되어 있는 하나님 나라의 법 조항을 마음속 깊이에는 믿고 있지 않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이제 공항을 향해 집을 나선다 생각하며 나는 언제 거듭남으로 생명 책에 출생신고 되어 천국 여권을 발부 받은 사실이 있었는지, 그리고 지금 내 주머니에 그 여권을 가지고 있는지, 그래서 입국 심사 대를 아무 문제없이 통과할 수가 있겠 는지 하는 문제 앞에 자신의 상태를 점검해 보기 위해서도 역시 읽어 보 시기를 권합니다.

상인들이 물건을 선전 하면 직업상 의례히 그러려니 하고 소홀히 넘겨버릴 수 있는 상품도 장사와 관계없는 사람이 하면 오히려 더 관심을 끌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같은 내용의 상품이라 할지라도 포장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관심을 더 유혹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성경 전하는 직업과는 상관없는 ‘의사’라는 포장지를 사용하려 합니다.

나는 신학 교육을 받은 일도 없고 또 누구에게 성경을 정식으로 배운 일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으로서 감히 성경 얘기를 한다는 것이 정식 신학 교육 을 받은 분들에게 약간의 미안한 마음이 있기도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들 중 신학교육을 받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는 사실을 위안 삼아 담대한 마음 을 가지고 써나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무식하고 '엉망'이었던 그들이 갑 자기 담대해져서 기탄없이 복음을 전하게 되었던 것은 그들이 신학‘공부’ 를 했었기 때문이 아니고 어느 날 성령의 이끌림을 받으면서부터 입니다.
모든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성령의 감화에 의해 서만 깨달아 지는 것이지 결코 공부를 해서 머리로 이해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능숙한 화법으로‘성경지식’은 전수해 줄 수는 있겠지만‘생명의 탄생’은 성령의 역사로만이 할 수 있음을 믿습니다. 나는 인간의 육신을 취급하는 내과와 정신을 다루는 정신과 두 가지를 다 전공하였기 때문에 종교를 논한다 하더라도 아주 엉뚱하지는 않으리라는 자부심도 가지고 있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감히 책을 쓴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는 마음도 있지만 책을 집필 한다기보다는 성경책을 펴놓고 마주 앉아 대화하고 있다 는 마음으로 써 나가려 합니다.  작품성이라든지 문학성 같은 것과는 거리 가 멀기 때문에 그런 것은 기대하지 말고 보아주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전문분야가 아닌 부분의 의견에는 틀린 것이 있을 수도 있고 또 역사 적 과학적 사실을 기록하려는 목적이 아니요 단순히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 기에 제시한 자료들의 진위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 합니다.

같은‘기독교’인데도 이곳과 비교해 볼 때 한국의 기독교에는 미신적인 요소가 많이 섞여있는 것 같다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오랫동안 한국인들의 정신에 영향을 주어왔던 샤머니즘과 접목된 결과이지 아닐까 생각 되는데 이런 지적을‘비판’으로 만 판단해버리지 말고 학문 하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 성경을 기준의 잣대로 하여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태도를 가지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판단의 기준은 미국식도 한국식도 아닌, 또 장로교식도 천주교식도 아닌 오로지‘성경’만이 그 잣대가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같은 성경을 가지고도 이런 해석도 있구나 하는 비판적 시각이나 또 나와는 별로 상관없는 문제라는 객관적 태도로 읽지 말고 이왕 읽을 바에는 이 기회에 성경공부 궁극의 목적인‘구원’문제를 해결 또는 확인 하겠다는 적극적인 마음가짐으로 읽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보통‘성경공부’라는 표현을 쓰지만 사실은 성경을 통해‘나를 공부’ 한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고 있는 나의 정확한 정체를 발견하려는 자세로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이미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도 주변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구하는데 도움이 될 공부가 되어 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능한 한 많은 성경 구절들을 골라 나열 했습니다.
표지의 이름이 너무 번잡스러운 것 같기는 하지만 그런 제목이 시선을 끄는데 더 효과적이기를 기대하며 그냥 그렇게 정했습니다.
(2007년 California Los Angeles 근교에서)

 

*총 론
성경이 생소한 분들을 위해 약간 초보적인 얘기부터 하겠습니다.
사람들이 그 분을 인정하든 않든 인류 역사를 시기적으로 얘기할 때에는 예수라고 하는 분을 기준으로 하여 그분이 오기 이전을 B.C (before Christ =예수 이전)라고 하고 이후를 A.D. (Ano Domino=주후)라고 분류합니다.
‘성경’이라는 책은 66권의 작은 책자들을 한 권으로 편집한 것인데 예수 이전인 B.C.에 기록된 39권을‘구약’이라고 하고 이후인 A.D.에 기록된 27권을‘신약’이라고 부릅니다.
이 책은 총 40여명의 저자들에 의해 B.C. 1500년경부터 A.D. 100 년 경까지 약 1600년에 걸쳐 기록된 것을 후대에 편집하여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성경’이 된 것입니다.

아득한 옛날에 기록 된 내용들이 지금까지 변형되지 않고 처음 기록된 그 대로 유지되어져 왔을까 하는 의문은 학자들의 몫으로 남겨 두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성경이 사실이 아님을 입증하려고 연구하는 학자들이 아마도 더 많을지도 모른대 그 내용들이 하나님의 말씀이냐 아니냐 하는 논란은 많지 만 기록 자체의 진위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분량이 너무 많고 광범위하기 때문에 창세기 첫 장부터 순서대로 읽어 나가는 것은 어려울 뿐 아니라 많은 경우 오히려 혼돈스러움을 주기도하는 책입니다.  첫 장을 펴서 읽어보면 이 우주를 말씀으로 창조했다느니 엿 세 만에 만들었다느니 하는 말도 되지 않는 것 같은 내용부터 시작 됩니다.
더 읽어나가다 보면 돼지고기는 절대로 먹지 말라고 되어있는데 좀 더 내려가다 보면 이것저것 가리지 말고 아무거나 다 먹으라는 정 반대 되는 내용도 쓰여 있습니다.  또 안식일을 어기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날 자에 의미를 부여하여 이 날 저 날을 구별하니 참으로 한심스럽구나 하고 쓰인 곳도 있습니다.  
완전한 의인이 되지 못하면 절대로 천국에 갈 수 없다고 쓰여 있는데 또 다른 곳에는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 해도 의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 에 한 사람도 없다고 쓰여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식인 것같이 보일 수도 있어 각자가 자기 편리한 부분을 강조하며 따르다 보니 오늘날에 와서는 셀 수도 없이 많은 교파들이 생겨나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혼자서는 창세 기부터 순서대로 다 읽는다 해도 사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이 성경입니다. 글자는 읽을 줄 알지만 아직 지리 공부를 한 일이 없어 위치감각이 전연 없는 다섯 살짜리 아이에게 Chicago Grand Ave. 1637 번지로 찾아 오면 큰 보화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차지할 욕심으로 세계 전체의 거리이름이 깨알 같이 적혀있는 운동장 크기만 한 세계지도를 펴놓고는 돋보기를 들고 일 년을 헤매는데도 눈만 피로할 뿐 찾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때 어느 분이 나타나서 Chicago는 미국 중부에 위치해 있고 미국은 북 아메리카에 있고 북 아메리카는 지구의 어느 위치에 또 Grand Ave.는 Chicago 어느 부위에 있다는 등 대략의 윤곽을 잡아준다면 훨씬 쉽게 찾을 수가 있게 될 것 입니다.

“읽는 것을 깨닫느뇨 대답하되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행8:30) 하는 말씀과 같이 무작정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어 나가는 방법 보다는 대략적인 윤곽을 먼저 가르침을 받은 후 읽으면 훨씬 빨리 이해하게 될 수 있게 됩니다.

“진리의 말씀을 올케 분변하며...”(딤후2:15)하신 말씀대로 어떤 글을 읽을 때 구별을 하지 않고 무조건 아무데나 적용시키면 혼돈을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편지를 읽은 후 대성통곡을 하고 있는 친구를 보고 는 그 사유를 물은즉 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받았다는 것 입니 다.  그 친구가 자세히 보니 그 편지는 옆집에 가야 될 것이 잘못 배달 된 것이었습니다.  수취인을 확인하지 않고 읽은 데서 온 착오입니다.

성경에는 온 인류를 유대인과 이방인 그리고 교회의 세 부류로 분류하고는 각 편지마다 받는 대상을 명기하였습니다. 예로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는 편지를 받은 대상은 그 주소가 분명하게 유대인이라고 적혀있고 음식 을 가릴 필요가 없다는 편지를 받는 대상은 이방인과 교회로 명시되어 있습 니다. 어떤 글은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입학 준비용으로 또 다른 글은 입학 하여 학생이 된 후의 학교생활의 지침으로 읽으라는 글인데 그런 구분 없이 무조건 자기에게 다 해당 시키려면 혼돈이 올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를 엄격하게 구분하여 시대마다에 다른 메시지 를 주고 있어서 절기나 특정한 날 자에 의미를 두는 것은 구약시대에 해당 된 것인데 그것을 구분하지 않으면 혼돈이 올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의 몇 가지 큰 줄거리들을 구분하는 법을 알려 드림으로써 스스로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 하거니와... 이것 을 기록함은...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5:39,20:31)

우리의 모든 행위에는 반드시 그 목적이 있습니다.  식당에 가는 것은 밥을 먹기 위함이요 병원에 가는 것은 병을 고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성경 공부를 하는 것이나 교회에 다니는 것은 그 목적이‘영생’을 얻기 위함 이라는 말씀들입니다.  아무리 식당엘 수 천 번 출입 했다 해도 밥을 먹은 사실이 없어서 배부름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식당에 다니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듯이 아무리 기독교인으로써 오랜 종교 생활을 했고 높은 직분을 받았다 해도 영생을 얻은 경험이 없었으면 그 목적에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것입니다.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의학 공부가 필요하지만 머릿속 지식으로만 머물러 있을 뿐 실지 병을 낫게 하지는 못하는 공부라면 아무 소용이 없듯이 성경 공부도 만약 그것이 아직 나에게 영생을 얻는데 까지 인도하지는 못하고 머릿속 지식으로만 머물러있는 공부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이 영생은 성경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성경을 옆에 놓고 직접 찾으면서 읽기를 권 합니다.
혹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옛날 어느 지역의 사무라이 우두머리가 옆 지역 우두머리에게 더 이상 싸우지 말고 서로 화친하자는 내용의 편지를 썼습니다. 종을 불러 착오 없이 그 편지를 전달하도록 명령 하면서 화친의 표징으로 닙본도 한 자루를 선물로 전달하도록 했습니다.  그 종은 그 편지를 소중히 품에 품고 길을 가다가 하루는 내를 건너던 중 발을 헛디디어 물에 빠져 온 몸이 흠 벅 젖고 말았습니다. 젖은 옷과 편지를 펴서 바위 위에 올려놓고 말리고 있었는데 마침 옆을 지나가던 스님 한 분이 한참 서서 그것을 보고 있더니 글을 읽을 줄 아느냐고 그 종에게 물었 습니다. 모른다고 하니 큰일 났다고 하면서 그 편지의 내용을 얘기해 주었 습니다.

그 내용인즉 더 이상 싸우지 말고 화친하자는 내용과 더불어 그 표징으로 자기 집 대대로 내려온 가보 칼 한 자루를 선물로 보내니 그 성능을 시험해 보기 위해 그 종의 목을 처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종은 그 길로 도망을 하여 글을 읽을 줄 몰랐기 때문에 죽을 번했던 한을 품고 열심히 공부하여 후에 훌륭한 선비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마도 성경책 한 권쯤 가지고 있지 않는 집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냥 가지고 있을 뿐 아니고 소중히 모시고 매주 교회에 갈 때마다 귀중하게 품에 품고 다닙니다. 그냥 소중한 책으로 그렇게들 모시고 다니는데 그 책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요약하면‘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지옥으로 보낸다’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곧 재림하시는데 그것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 을 체포하여 지옥으로 보내기 위함이라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자기는 확실히 구원받은 사실이 없으면서도 그냥 소중한 책으로 모시고 다니고 또 재림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은“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행28:26) 즉 그 종과 같이 글을 읽을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기회가 글을 깨우치는 기회로 되어 지기를 바라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 려 합니다.
불필요한 교리 논쟁을 피하기 위해 나의 말은 성경구절들을 연결해 주거나 간단한 설명 정도로 제한하려고 노력했으며 나의 의견보다는 성경구절을 소개하는데 더 많은 역점을 두고자 노력 했습니다. 그래서 지루하게 느껴 지더라도 많은 성경구절들을 길게 여러 곳에서 또 반복 인용하였습니다.

이 글은 한번 읽고 통과하는 흥미 위주의 소설책과 같이 읽는 것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읽고 구원받도록 까지 인도하는 것이 궁극의 목적 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수험생이 해답을 찾으려는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공부하는 것 같은 태도로 성경을 직접 찾아 확인하면서 읽기를 권합니다.

필요에 따라 전에 했던 같은 얘기나 예화나 성경구절들을 반복 사용하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한꺼번에 빨리 읽어 치우려고만 성급하게 서둘지 말고 시일이 걸리더라도 생각을 정리해 가면서 그리고 확실히 소화 시키 면서 조금씩 차근차근 읽어나가기를 권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잘못된 지식이나 선입견을 교정하고 생각을 성경으로 돌리게 하기 위해 지적할 것은 지적하였습니다.  비판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니 혹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기성 종교적 개념에 배치된다 하더 라도 그것이 내 마음에 드는지 들지 않는지가 아닌 성경 기록에 위배 되는 지 아닌지 만을 따지시기를 바랍니다.

현대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교리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대부분 주류 교파들은 작은 지류에서의 차이는 있지만 기둥 되는 근본 교리 자체는 대부분들 동일한 교리를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그 교리들을‘머리’로는 믿고 있지만‘마음’속에 확실하게 믿어 진 경험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이 글의 내용들은 대부분의 주류 교파들과 교리 자체에는 별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리 적인 측면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내가 내 교회에서 가르치는 기독교 근본 교리인‘죄 사함’의 경험이 있었는지 하는 자신의 내적 상태에 더 역점을 두고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셨던 2,000년 전에는 천주교 장로교 침례교 안식교 하는 교파가 없었고 오직 성경만이 가르침의 원본이었습니다.  공통점이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 동창회나 향우회를 조직 하듯이 교파라는 것은 후대 에 성경적 견해나 사상이 비슷한 인간들끼리 모여 만든 조직 일뿐 하나님 에게는 티끌만큼의 의미도 없는 인위적 울타리에 불과 하다고 봅니다.
물론 교파마다의 교리에 대한 성경적 검증이 필요할 수는 있겠지만 개인의 입장에서는 언젠가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 그 동안 내가 몸담아 왔던 교파나 교회는 아무 의미가 없어지고 나 개인의 자격으로 하나님 앞에 홀로 서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천국엘 가봤더니 천주교인도 많이 와있었고 장로교인도 또 안식교인도 많이 와있었습니다. 지옥엘 가 봤더니 거기에도 역시 천주교 출신도 장로교 출신도 또 안식교출신도 많이 와있더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농담조로 지어 낸 얘기겠지만 깊이 새겨야 될 대단히 의미심장한 얘기입니다.
나의 운명은 나 개인의 상태에 의해 결정 되어지는, 나 자신이 책임져야 할 문제이지 어느 교파나 교회나 그 누구도 덤으로 나의 운명을 대신 책임져줄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자.(Back to the Bible)
이것은‘원래의 위치로 돌아가자’는 표현인데 지금 어디에 와있기에 그렇 게 하자는 것인지요?   지금‘전통’‘종교’에 머물러 있다는 말이지요.
이해를 돕기 위해 이런 게임을 가상해 보겠습니다.
한 팀이 1,000명씩인 두 팀을 만들어 A 팀은 오른편에 B 팀은 왼편에 일 열로 세웁니다. 각 팀 에게 처음 똑같은 1m짜리 노끈을 보여주면서 첫 번째 사람으로부터 시작하여 차례로 전 사람의 끈의 길이를 눈짐작하여 잘라 자기 것을 만들고는 다음 옆 사람에게 보이며 그 길이대로 만들도록 하는 게임입니다.

A 팀은 매 사람마다 1mm 씩이 길게, 그리고 B 팀은 1mm 씩이 짧게 잘랐다고 가정합시다. 1mm는 느끼지 못할 정도의 작은 차이 이지만 맨 끝 1,000번째 사람의 노끈의 길이는 A팀의 것은 2m 가 되고 B 팀의 것은 1mm 로 되는 엄청난 차이가 나게 됩니다. 원래는 똑 같은 1m 인데 말입니다.
만약 각 사람마다 에게 1m짜리 원본을 보여주면서 자르라고 했더라면 큰 차이가 없었을 것인데 원본이 아닌 바로 옆 사람의 것을 본 따도록 한 결과 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의 형태 교회의 모양 예배 드리는 모습들은 원본 성경에서는 비슷한 것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영 엉뚱한 모습으로 되어져 있습니다. 원본을 기준으로 하여 나가기보다는 전통을 기준으로 하여 2,000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그 변화가 감지되지 않을 정도로 아주 조금씩 점진적으로 변화되어왔기 때문입니다.  2,000년 전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이곳 저곳 옮겨 다니시다가 자 오늘이 일요일이니까 다들 모여 예배 드리자 하시 며 오늘날 우리들이 하는 식의 예배의식을 갖추었을까를 상상해 봅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현재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이제는‘전통’적인 것이 ‘정통’으로 되어있고‘원본’대로하면 오히려‘이단’으로 생각되도록 판단기준 자체가 변질 되어 버린 것입니다.
오늘날 거의 모든 교회들에서‘정상’으로 인정되며 행해지고 있는 북치고 장구치고 기타 치며 귀청 찢어질듯한 시끄러운 예배가 불과 50년전 우리 어렸을 때 어느 교회에서 행해 졌었다면 두말할 것 없이 그곳은 하나님께 불경죄를 자행하는‘이단’집단으로 분류 되어 노회로부터 탈퇴 당했을 것 입니다.

원래 성경에서 명하는 세례는 온 몸을 물속에 잠그는 것임을 한국 어느 장로교 목사님이 성경에서 발견 하고는 그런 세례를 받았는데 그것이 문제가 되어 노회의 재판에 회부된 결과 장로교에서 축출을 당한 사건이 실지로 있었습니다. 원본대로 하는 것이 너무 번잡하기 때문에 한국 장로 교에서는 성경의 규정을 어기면서 물 몇 방울 뿌리는 것으로 간소화 하도록 규정한 것인데 그 법을 어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사람이 만든 법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위에 둔 전형적인 예인데 이것은 하등 이상할 것도 없는 그렇게 되라고 이미 오래 전에 예수께서 말씀 하셨던 대로의 변질입니다.

“너희는 왜 너희 전통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있다. 그들은 사람의 만든 법을 마치 내 교훈인 것처럼 가르치고 있으니 나를 헛되이 예배하고 있다” (마15:6-9 새 번역 성경)

만약 현대 기독교의‘교회’나‘예배’의 모습들을 원본인 성경 기록에서 찾으라는 숙제를 어느 학생에게 낸다면 그 학생이 그 숙제를 완성할 수 있 을까를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외형모습의 변질보다도 더욱 심각한 문제는‘기독교’라 제목 하는 연극의 시나리오 원본에는‘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맡은 주연 배우는‘예수’ 요‘나’의 역할은 해결함을 받는 입장으로 되어 있건만 실지 오늘날 공연 되고 있는 현대판‘기독교’연극에서는 예수의 역할은 팜프렛에 이름이 실려있는 정도 일뿐 실지 문제해결의 모든 활동은 나 스스로의 열심과 나의 노력으로 하는‘내’가 주연으로 되어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또 이런 상상을 해보겠습니다. 태평양을 항해하다가 조난을 당하여 어느 섬에 도달하였습니다. 그 섬은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않아 외부 세계가 있는지조차 전연 모르고 있고 물론 기독교라는 것이 있다는 것도 전연 알지 못하는 섬입니다.
구조될 때까지 일 년 정도를 유하며 전도를 한 결과 1,000명의 섬 인구 중 200명쯤이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구조되어 그 섬을 떠날 때에 성경 한 권을 주면서 그 책에 기록된 대로 신앙생활 잘 하라고 당부를 하며 그들과 해어졌습니다.

10년 후 다시 그 섬에 돌아와 보니 500명 정도로 기독교인이 늘어났고 그때 주고 떠났던 성경을 지침서로 하여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상상해 봅시다. 신앙생활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오늘날 기독 교인이라고 하는 우리들의 모습과 같을지를, 아니 비슷한 점 10% 만이라 도 그들에게서 찾아볼 수가 있을지를.
그들의 모습이 아직 오염되어있지 않은 성경원본 대로의 모습이련만 현대 기독교인들의 눈에는 오히려 영락없는 이단 집단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날 기독교라고 하는 것이 원본에서 이렇게 멀리 떠나 변질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만약 이런 설명이 이해가 되지 않거나 거부감이 있다면 다시 당신의 중학생 아들을 불러 사도행전 전체를 읽은 후 거기에 표현된 교회나 예배의 모습을 한 페이지에 요약해 제출하라는 숙제를 주어 보십시오. 그리고 그 숙제의 답안지가 현대 교회의 모습과 비슷한 것이 10% 만이라도 있을까를, 또 만 약 예수께서 당신 교회의 담임 목사님으로 부임 하셨다면 지금과 같은 형태 의 목회를 하실까를 생각해 보며 그래도 당신은‘전통사수’를 할 것인지 아니면‘성경으로 돌아갈 것’(Back to the Bible)인지를 결정 하십시오.

물론 전통이나 종교이기 때문에 그것들이 다 잘못이라거나 오늘날 우리들 이 하고 있는 것들은 다 버려야 된다는 말은 아니요 다만‘전통’과‘원본’ 이 상충하여서 하나만을 택해야 할 입장일 때는 어느 편을 택해 야 되겠느 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스타일과 다른 것은 무조건‘잘 못’으로 정죄하는 과오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듭 거듭 강조 하는 것은 하나님께는 우리의 속마음(heart)을 보시지 그런 외형 적인 것은 이러하든 저러하든 아무 관심을 두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가능한 한‘전통’은 배제하고 Back to the Bible 하여 ‘원본’에 충실하도록 노력 했습니다. 이것을 읽는 독자 여러분도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는‘전통’의 선입견 에서‘원본’으로 마음을 돌리려는 노력을 하시기를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