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ng S Kim
Sent: January 27, 2015
Subject: <생각하며 삽시다>

긴 글입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기독교인들이여…’>
(이 글은 스스로가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만 읽으시기 바랍니다.)

한국의 어느 분이 Haiti 관광여행을 갔었는데 거기에서 지진을 만났습니다.  
무너진 건물더미에 깔려 살려달라는 부르짖음을 들으면서도 못들은 척 입에 담배를 물고 골프 체 끌며 유유히 지나가는 모습이 우연히 카메라에 찍혀 KBS 뉴스에 나갔 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 저분 우리교회 장로님인데 하며 그를 알아 보았고 결국 그 는 노회 재판에 회부 되었습니다. 기독교계가 문제 삼은 것은 구조에 무관심 했던 것이 아닌 장로신분으로 담배 피웠다는 것과 주일날인데 교회 가지 않고 골프 친 것이었습 니다.  오늘날 기독교계의 위선적 풍토를 풍자한 지어낸 얘기 입니다.

기독교인이라면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너무나 당연하지요. 그런데 죄에는 더 큰 죄 더 작은 죄 하는 경중이 있는데 일률적으로 살인이나 강도 같은 것이 가장 큰 죄이겠지 하는 생각은 일반 사회적 통념입니다.  실지 그 경중의 값이 매겨지는 것은 피해자 가해 자의 입장과 나의 신분 등에 따라 다르게 됩니다.
회사사장의 입장은 자기 직원이 밖에서 사기를 치든 혼외 정사를 하던 상관하지 않지 만 회사에 금전적 손해를 끼치는 것이 가장 큰 죄일 것입니다.  반면 집에 있는 아내의 입장은 남편이 회사에 금전적 손해 끼치는 것 아무 관심 없지만 젊은 여비서와 정사를 가진 다면 그것이 가장 큰 죄로 여길 것입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살려달라 부르짖는 사람을 보고도 구해줄 생각 않고 그냥 지 나쳤을 때 일반인이라면 6개월 징역형 정도의 죄라 하더라도 해수욕장 인명구조 자격 증 소지자가 그랬다면 5년 형 짜리가 될 것입니다.
의사면허증 소지자에게는 금융사기나 간음죄보다 잔디밭에 피 흘리며 죽어가는 사람 보면서도 도와주지 않고 골프에만 열중하는 것이 더 큰 죄입니다.
‘기독교인’이란“내가 천국열쇠를 네게 주리니…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는 말씀대로 지옥 가는 이웃 구출하라는 면허증 발부 받은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그들 에게 있어서의 가장 큰 죄는 당연히 그 구출하는 일 소홀히 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성경을 기초하여 하나님의 관점에서라는 것을 상상하며‘기독교인’면허증 가진 사람 들이 저지르는 죄의 가격들을 매겨 보렵니다.
담배 피우는 것: $0, 일요일 골프 치는 것:$0, 술 마시는 것: $0, 술 취하는 것: $5,
동성연애: $5, 음식 가리지 않는 것:: $1, 간음: $100, 억울하게 10년형 언도 받은 사람 증언해주면 무죄로 해줄 수 있는데 귀찮아 지나치는 것: $500, 총살형 지나치는 것: $1,000, 물에 빠져 살려달라는 사람 못 본체 지나치는 것: $1,000, 영원한 지옥 가게 되는 이웃 관심 없이 지나치는 것: $100,000,000,000 x10000000000…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마23:24)  예수께서 2,000년 전에 지적 했던 딱 그대로 가장 중요 한 영혼 구출 소홀히 하는 것은 흘려 보내고 시시한 것들 트집잡는 일에는 목숨 걸듯 열심 인 위선 자들로 전락해 버린 것이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의 모습이 아닌지요.
이것은 21세기에 사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하시는 책망입니다.
하나님이라는 분이 각도기 손에 들고 아버지 무덤 앞에서 허리15도 숙여 절하는 것 은 무죄요90도 이상 구부리는 것은 유죄라는 식의 유치한 comedy 정죄 하는 것으로 생각 합니다. 그러면서도 예수 님의 유언이요 최대 명령인 복음 전하는 일에는 아무 관심 없어도 그런 것은 아무 죄도 아닌 것으로 여기도록 위선적이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딤후4:2) 는 말씀대로 복음 전파는 선택상항이 아니고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엄한 명령인데 이것은 성직자만의 임무인 것처럼 발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험판매원의 주 업무는 보험 가입시키는 일이요 의사의 주 업무는 환자 진료하는 것 이듯 그리스도 인의 주 업무는 지옥으로 가는 이웃들 깨우쳐 구출해 주는 일입니다.  환자 진료 태만히 하는 의사나 보험판매 하지 않는 agent는 fire 되어야 하듯 영혼 구출에 관심 없는 그리스도인은 fire감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는 것 알기는 하는데 너무 바빠서라는 이유 가진 분도 있지요. 오늘날 그리스도 인들이 무슨 일에 그토록 바빠 전도에 뛰어들지 못합니까? 성경공부 하려고 잦은 모임 가져야 하기 때문이지요. 성경공부 하는 것 좋은 일인데 무엇에 쓰려고 성경공부나 성경암송들을 하는지요?   그거야 당연히‘전도하려고’ 라고 말하지요.
요리교본을 다 암기할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지만 실지 요리는 하지 않는다면 그 요리 공부는 아무 필요 없듯이 성경공부의 목적은‘공부’자체가 아니요 그리스도인으로 써의 생활과 이웃 구출하는 방법 배우려는 것이 그 목적일진데 그런 행함 없이 공부를 위한 공부라면 시간 낭비가 아니겠느냐는 말입니다.

오늘‘성경공부’의 주제가“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라고 합시다.  이 구절에서 오늘 배워야 할‘성경공부’가 무엇일까요?
이 명령 이행해야 되겠구나 마음 다시 다짐하며 그 방법과 계획을 함께 의논 하며 세워 나가는 것이 오늘 공부의 목적이지요.  이 구절은 어느 복음서에 있으며 서기 몇 년에 어디에서 누가 기록 했고... 같은 그런 공부는 신학교에 맡기고요.

일반 적으로 각 교회마다 매주 구역 모임을 가집니다. 구역모임의 주 목적은 가까운 이 웃 구성원 중 어려운 처지의 가정 없는지 와 이웃에 전도 받아야 될 대상 있는지 찾아 의논하고 실행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런 일들 얼마나 했는지 지난 일년 52번의 내 구역 모임 점검해 봅시다. 요리는 한번도 한일 없이 요리책 공부만 열심히 하고 있었 다면‘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위선자 구역 원들이여’하는 책망의 대상 아닐까요?
병으로 고통 중에 있는 이웃 식사나 간병해 드리는 것 물론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만약 오늘 돌아가신다면 그 영혼 어디로 가게 되는 것인지 관심 가져주며 그 문제 해결 받도 록 도와주는 일이 몇 억 배 더 중요합니다. 

소방관들이 무리 지어 모여있는 교실 건너편에 불이 나서 살려달라 아우성입니다.
그러나 나서는 소방관 아무도 없습니다.  화재 때의‘인명구조법’이라는 과목의 진급 시험 준비 공부에 바쁘기 때문이랍니다.  의사들이 모여‘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진 사람은 10분 내에 응급실로 후송해야 된다’는 의사면허 renew시험공부를 하고 있는 교실 앞에 어느 환자가 쓰러졌는데도 모두들 방치해 두고 있습니다.  물론 공부에 바빠서지요.  한심하고 무책임한 사람들이지요.  그런데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우리는 요? 이것은 공부 필요 없다는 것 아니요 생명 구하는 일에 연결 되지 않는 ‘공부’자체만이 목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지금 LWV에 오셔서 활동하고 계신다고 상상해 봅시다.  이 gate 저 gate 다니시면서 지금 우리들이 하고 있는 식의‘종교의식’인도하고 다니실까요?
2,000 년 전 가는 곳마다의 그의 주 활동은 회개를 촉구 하는 일이었고 마지막 지구를 떠나는 승천하시면서도 복음서 모두에 똑 같이 기록 되어 있는 마지막 한마디 부탁 은“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는 말씀이었습니다.  이것은 부탁이 아니라 명령으로써 기독교인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 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막1:17)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제부터는 어떻게 해야 더 많은 고기를 더 효과 적으로 구출해 낼 수 있을까가 주 관심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방법에 있어서는 혼자 낚시대로 한 마리씩 잡는 것 보다‘교회’라는 그물 로 합동작전 하는 것이 효과적이기에 교파나 교회들이 가지고 있는 각기 다른 특성이 나 스타일을 십분 활용하여 합동작전 전개하는 것이 그분이 원하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힘 합해도 부족할 우리가 상대방 교파나 교리 비평 논쟁 같은 엉뚱한 곳에 정력 을 낭비하며 힘을 분산시키고 있지는 않은지요?  평신도인 우리가 왜 신학자가 되어 이웃끼리 논쟁을 해야 합니까?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딤후2:23)
소설이나 음악의 비평은 평론가에 맡기고 우리는 그것을 읽고 들으며 즐기는 입장이면 되듯이 그런 논쟁은 신학자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함께 고기 잡이 합동작전에만 매진 하자고요. 이웃집에 들어가 청소상태 부엌 청결상태를 왜 우리가 간섭해야 합니까?  그런 점검은 전문 검사원에게 맡기고 우리는 이웃의 쌀통이 비어 있는지 입을 옷이나 있는지 예수를 구주로 확실히 받아드리고 있는지 같은 것 살피자는 것입니다.

병들어 누어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부르시며 부탁합니다. 나 예수 믿으라고 너 자꾸 얘기 해 왔었지. 이제는 믿고 싶구나. 나 이제 30분 후면 죽는다고 의사가 말 하는데 전도 좀 해달라 하시는데 무슨 얘기를 해 드리겠습니까?

예수께서 아버지의 죄를 하나도 남김 없이 몽땅 다 담당하시고 아버지 대신 십자가 에서 피 흘려 죽으셨답니다. 그래서 아버지 죄는 이미 다 용서 되어 있어요. 이것을 마음에 받아들여 믿기만 하면 되니 의심 말고 믿으시고 이제 편안히 가십시오.  이것 이상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이것이 예수께서 오신 유일한 목적으로써 어느 교파나 차이 없는 동일한 성경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30분 시간에 장로교 교리 천주교 교리 안식교교리 주입 시키렵니까?

우리는 교파 교회가 다르더라도 내 교회 교인 만들려는 의도 없이 이웃 불쌍히 여겨 그를 건져주려는 사심 없는 순수한 마음 하나만 가지고 함께 복음 전한다 면 위에서 내려다 보시는 분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교파 논쟁이나 서로 자기교회오라고 쟁탈전 하는 것이 복음 전하는데 도움이 될지 방 가 될지, 성령을 돕는 것이 될지 마귀를 돕는 것이 될지를 생각합시다.  물론 좋은 교회 찾아 가도록 해주는 것도 중요 하지만 먼저 지옥 면하도록 해주는 것이 감히 비교할 수 없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신학자들은 혹 자기 교파 보호하려는 다른 의도 가질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 같은 평신 도 들이 교회 다니는 것은 그것이 어느 교파이던 단순히 지옥 면하고 하나님 뜻대로 살려는 동일한 목적 동일 한 의도가 아니겠습니까?

길을 사이 두고 서로 바라보이는 곳에 McDonald 식당 두 개가 있습니다. 거기서 일 하는 한 사람은 자기 쪽으로 손님을 끌어들이려고 안간 힘을 쓰는 데 다른 한 사람은 아무 곳으로 가든 손님 편리한 곳으로 가라고 하며 친절히 안내 합니다.  무엇이 이렇 게 다른 태도를 가지게 할까요?  한 사람은 전체 McDonald 주인의 아들이요 다른 한 사람은 수입액에 따라 커미션을 더 받는 종업원이기 때문 입니다. 반드시 물질 적인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자기 이익과 관련 없는데도 교인 쟁탈전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내 아버지 하나님이란 것을 믿는 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저는 아직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한 가족과 친척들이 많습니다.  교파나 출석교회 따위 상관 없이 어디를 다니던 아무 상관 않을 테니 늦어버리기 전에 제발 성경공부 하여 지옥 만은 면해 다오 하는 것이 그들을 향한 저의 간절한 바램 입니다.
지금 내가 전도하려는 상대가 말기 암 선고 받고 지옥이냐 천국이냐의 아슬아슬한 갈림길에 놓여있는 사랑하는 내 자식이라는 생각으로 부모 된 입장의 절박한 자세로 임한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교파나 교리 따위의 사소한 차이들은 내려놓게 되고 더 많은 영혼들을 구출할 수가 있게 되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우리들이 그 무엇 보다 도 수억 배 더 중요한 본연의 업무 에는 별 관심 두지 않고 다른 시시한 것들에 더 신경 쓰는 이런 상태를 진단 해 달라고 정신과 의사에게 의뢰 한다면 그 의사의 진단은: ‘실지 마음속 깊숙이 에는 지옥의 존재를 믿지 않으면서도 믿는 척 꾸미는 위선자’가 아니겠습니까?
온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로 하는 한 사람의 영혼이 한번 결정 되어지면 절대로 되돌릴 수 없는 영원한 영원한 운명이 되어 질 이 엄청난 것에 비하면 티끌만큼의 의미도 없는 시시한 그런 것들에 그토록 목매어 있을 수는 절대로 절대로 없습니다.  일개 정신과 의사의 눈에도 그렇게 보일 진데 감히 하나님이라는 분의 눈길 숨길 수 있으리라는 생각한다면 그분을 시시한 의사보다 못한 분으로 격하 시키는 것이지요.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기독교인들이여…’하는 지적 받지 않으려면 우리 이제 구역질 나는 위선과 거룩한 종교인의 탈 벗어 버리고‘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 소서…’ 하는 본 모습 그 대로의 솔직한 사람들이 됩시다.

성경 전체의 흐름 보면 하나님께서는‘솔직하지 못한 착한 사람’보다‘솔직한  나쁜 사람’을 더 좋아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독사의 자식들아 하면서 가 장 미워하셨던 부류는 경건한 종교가들이었고 가장 사랑하셨던 부류는 자신은 죄인이라는 간판 숨기지 않는 창녀나 죄인들이었음을 생각합시다.
사위 감 며느리 감 고를 때 부모가 자식을 볼 때 또 이웃이나 친구끼리도 솔직하 지 못한 착한 사람 보다 솔직한 나쁜 사람을 더 좋아한다는 것을 생각하며 위선자 기독교인이 아닌 솔직한 기독교인이 되자는 것입니다.

기독교는‘나쁘지만 솔직한 사람 양성소’가 되어야지‘착하지만 위선적 사람 양성소’가 되어 서는 안 된다고 생각 합니다. 물론 인간끼리의 사회 생활에서는 약간은 위선적인 예의범절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벌거벗 어야 된다는 말 입니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는 말씀 앞에서 나에게 그런 여자 처다 보지도 않도록 억제할 수 있는 큰 믿음 주신 것 감사합니 다 하는 위선적 사람보다 아무리 억제하려 해도 예쁜 여자 보면 자꾸 눈이 돌아 가는데 이 연약함을 어찌해야 합니까 이런 나도 용납하여 주십시오 하는 솔직한 사람을 더 사랑 하신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 입니다. (눅18:9-14)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라는 곳이 진짜로 있다는 것을 진짜로 믿는다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들 다 잘못 되어있고 다 버려야 된다는 것이 아니요 진짜 해야 될 것인데도 하지 않고 있는 것들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많은 일들 중에서 먼저 해야 되는 priority를 바로 알자는 것입니다.

남 가주에 만도 이미 1,350 개의 한인 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저 개인적 생각에는 이미 more than enough요 또 이 주변에 좋은 교회들 많습니다.  만약 하나를 더 만들어 추가 시킬 여력 있다면 그 energy를 바로 옆집에 있는 한 영혼 더 구출하는데 쏟는 것이 더 바람직하리라 생각합니다. 지금 이곳처럼 우리 이웃들이 여러 교회에 분산 되어 다니는 것 꼭negative로만 볼 것이 아니요 어찌 보면 더 많은 사람들 구출 할 수 있는 오히려 장점이 되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 해봅니다.

‘세월은 살과 같고 친구는 죽는 중에 그대 목숨 오늘 밤 모르니…’

요즘 우리 주변 이웃들 중 잊을 만 할 때쯤이면 한 분씩 떠나가십니다.
그 이후의 그분들의 영원한 처소는 어디일까 하는 것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우리 심각하게 생각해보며 관심 가져야 할 우리의 책임이요 사명이 아니겠습니까?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라고 되어 있는데 일반 사회보다 이곳은 심판의 날이 훨씬 가까이 온 분들이 사는 곳입 니다.  그만큼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우리들이 급하게 해야 할 일들이 많이 널려 있다 는 것 아니겠습니까?

*‘추수할 것 많은 때에 일꾼 심히 적으니... 무르익은 저 곡식은 낫을 기다리는데 기회 지나가기 전에 어서 추수 합시다’(308)

*‘멀리 가서 이방사람 구원하지 못하나 네 집 근처 다니면서 건질 죄인 많도다. 천사같이 말 못하고 바울같이 못하나 예수께서 구속함을 힘을 다해 전하세.  죽을 사람 구하라고 예수 너를 부르니 힘이 없어 못한다고 핑계하지 말지라.  주가주신 직분 맡아 항상 기뻐 지키고 부르실 때 대답할 말 나를 보내 주소서’(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