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ng S Kim
Sent: January 20, 2015

<‘하나님’을 미신적 대상으로 전락시키지 맙시다.>
저는 내과와 정신과 두 전문과의 수련을 마친 후 잠깐 정신과 개업을 했다가 후에 포기했다는 말씀 전에 해드렸었는데 새로 join하시는 분 을 위해 다시 하렵니다.  대학 타운이라 환자 들이 주로 대학생들이 었 는데 심각히 호소하는 그들의 언어만이 아니라 문화적 분위기를 50% 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한번은 Michigan대학 어느 여대생 환자를 상담하는데 평소 하던 대로 다음 번 만날 때는 자신의 성장 과정 story 와 현재의 문제들을 글로 써오라 고 했습니다.
한 두 페이지를 기대 했었는데 큰 대학 노트 한 권 전체에 깨알 같이 빽 빽이 쓴 소설 식의 글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 것을 읽을 시간도 없으려 니와 읽는다 해도 그 영어를 내가 다 이해할 수도 없음을 알고 있었지요.  내 앞에 앉아 눈물을 흘리며 자살까지를 생각하는 생사에 관한 심각한 인생문제를 호소하는 그녀를 보면서 알아듣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먹고 살기 위한 수단으로 이 짓 계속할 수는 없다는 죄책 감에 정신과는 포기하고 그 이후 평생을 내과의사의 길을 가고 있다는 얘기였지요.
하지만 정신과 공부 경험이 생계수단으로는 이용 되지는 않았지만 세상 사물을 보는 관점 특히 나 자신 내면의 위선을 종교를 성경과 하 나님을 보는 관점과 이해 하는데 있어서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데 크게 도움을 주었고 결과적으로 나의 운명을 바꾸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 주었기에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닌 행운의 계기 되었음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당구공이 정확한 물리학적 기하학적 법칙에 의해 각도와 방향 잡아 굴 러가듯 정확한 과학적 이치에 따라 생명이라는 것이 좌우 되는 의학이 라는 과학에 50년 젖어있는 나에게‘우연히’‘저절로’‘무조건’ 이라는 설명들은 용납 되지 않았었지만 소위 모태교인으로써 감히 성경 의 믿을 수 없는 부분이나 불합리성을 비판할 수 없어 억누르며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신과 공부를 하면서 발견하게 된 것은 사람이 만든 ‘종교’가 그렇게 심리학 법칙에 위배 되도록 만드는 것이지‘성경’ 은 오히려 심리학 법칙에 더 확실히 맞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들이 일상 생활에서‘신앙생활’이라는 이름을 사용 하며 생각 하고 행하는 많은 경우들이 사실은‘신앙’이라기 보다 ‘심리’와 관련 된 경우가 많음을 볼 수가 있게 되면서 나 자신을 진단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던 것입니다.
전에는 도저히 이해 되지 않는 것을 무조건 믿는 것이 믿음 이라고 생각 했었는데 그것은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는 맹신이요 미신이라는 것, 믿 는 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믿음이 좋기 때문이라고 생각 했었는데 반 대로 그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 기도할 때 큰 소리로‘주여’ 하며 부르짖는 것이 믿음 좋은 것이라 생각 했었는데 내 속에 주님이 없 기 때문이라는 것, ‘하나님’이라 는 것 분석하면 사실은 각자가 자기 머리로 만들어낸 대상이라는 것, 거듭 나셨습니까 하는 질문이 기분 나 쁘거나 그런 질문 받는 것 피하고 싶은 것은 거듭난 경험이 없었기 때문 이라는 것, 거액의 헌금을 하거나 신앙 생활이라며 희생하며 열심 내는 많은 경우들이 확신이 없는 속 마음을 달래 보려는 보상 심리기전 이라 는 것,  교회 생활이라며 열심히 함께 하는 것은 군중집단 속에 자신을 함께 묻어버림으로써 불안감을 감소시키려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 스 스로를 괴롭히며 신앙생활이라는 이름으로 고난의 길을 택하는 것이 믿음 좋은 것으로 알았었는데 자신의 죄 의식을 희석하기 위한 심리기 전일 수도 있다는 것,  병 고치는 일이나 방언 같은 것이 다 성령에 의해 서라고 생각 했었는데 기독교 아닌  다른 종교에서도 또 종교 아닌 일반 집단최면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심리 현상 이라는 것…
오늘날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신앙의 이름으로 자살 폭탄 등 세계를 어지럽히는 것을 비난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때가 이르면 무릇 너 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 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선기는 예라 하리라” (요16:2)  는 예수님의 예언대로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기독교가 죽인 숫자가 훨씬 많을 것입니다.  자기는‘신앙’(성경) 이라 생각 하 지만 실지는‘심리’(종교)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 때문입니다.  이처럼 신앙생활 이라는 이름으로 했었던 많은 행위들의 동기를 분석해 보면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집단체면 분위기 영향을 받은 종교적 맹신이나 감 정적 심리 현상의 결과인 것이 보여진 것입니다. 
예수라는 분은 실지 하나님인데 인간의 탈을 쓰고 처녀의 몸을 통해 내 죄를 사해주기 위해 탄생 했다는데 제정신 가졌다면 그런 것을 어떻게 덮어놓고 믿을 수가 있는지 그가 어떻게 내 죄를 사해줄 자격이 있으며 먼 옛날 2,000 년 전에 먼 땅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사람이 어떻게 지금 의 내 죄를 없앨 수가 있단 말인가 그것을 믿기만 하면 된다고 하는데 어떻게 무조건 믿는단 말인가?                                                 전엔 나도 무조건 믿는다고 생각 했었는데 정신과 공부를 하면서 자신 의 정신상태를 분석 해보니 믿으려고 안간힘 썼던 것이지 믿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소위 부흥회라고 하는 것들 중 군 중심리를 이용한 집단 체면 상태로 사람들을 몰아가는 경우도 많음을 보게 된 것입니다.  종교나 신앙에는 이치로 설명 될 수 없는 신비스러 운 면도 있다는 것 인정했지요.  하지만 무조건 믿는다고 했던 전과 달 리 따지는 태도로 찾은 결과 저가 알게 된 것은 가장 합리적이요 가장 논리적이요 가장 상식적인 것이 성경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과학 공부 하는 태도로 이해 되고 용납 될 때까지 의문을 가지며 따지는 태도로 approach 해야만 해답을 얻을 수 있지 무조건 믿겠다는 태도로 임한 다면 미신으로 빠지기 쉬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척 하지 않고 진짜 양심적이 된다면 무신론적 사상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오히려 정상 이요 솔직한 태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만 머물지 말고 그렇다면 설명 되지 않는 이 많은 것들은 어떻게‘저절로’‘우연히’로 넘겨버린다는 말인가 question 을 가 지는 학자적 태도로 임하면 찾을 수 있는 길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고전1:21) 기독교는 내가 하나님을 찾아 가는 종교가 아니요 하나님이 나를 찾아 오신 종교라는 표현대로 결국에는 사람이 자기 힘으로 하나님이라는 분을 찾을 수 없음을 인정 하고 교만한 마음을 포기하고 가장 밑바닥에 까지 내려갔을 때 그 분이 자기를 나타내 주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은 시인의‘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딱 그것이 었습니다. ‘그 동안 내가 믿으려고 안간힘 다 써보았지만 되지 않습니 다. 이제 나는 믿으려는 노력 모두다 포기할 테니 이제는 당신이 나타 나 주십시오’ 하고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 갔을 때 그 분이 나에 게 찾아와 믿게 해 주신 것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 후에 보니 내가 신앙생활이라는 이름으로 해온 많은 종교행위들의 동기와 의도가 일개 정신과 의사의 눈에도 훤히 보이거든“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 을 (heart) 보느니라” (왕상16:7) 하신 하나님의 눈에랴 하는 것을 보 게 된 것 입니다.                                                                 우리가 예배한다며 드리는 종교의식 같은 것은 사람들 스스로의 마음을 가다듬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지 하나님은 외형 상관없이 heart 만을 보신다는 것 찬양대의 음악이 아무리 훌륭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음악(vehicle)에 영향 받아 변화 된진 나의‘heart’(substance)를 받으시는 것이지 노래 자체를 받으시는 것이 아님을 정신과 공부 덕분 에 하나님의 입장으로 보게 되어 외형종교에 억매이지 않는 사고방식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런 것들이 필요 없다거나 버려야 된다 는 뜻이 아니요 그런vehicle 은 vehicle 에 불과할 뿐임을 보게 되었 다는 것 입니다.   비록 그가 초등학교 교육도 받지 못한 시골 아낙네일 지라도 자식의 효도를 받는 부모의 입장이 되면 자식의 속 마음을 보는 것이지 효도의 형식이나 의식이 아닐 것입니다.
생활에서도‘신앙’이라는 이름으로 같이 가는 무리 속에 묻혀 집단적 타성으로 별 생각 없이 그냥 갈 때도 있었습니다.  그 때 마다 방향 수정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신앙’인지 ‘심리’인지를 구별하는데 도움이 된 정신과 공부 덕분이었고 그래서‘Back to the Bible’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음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종교성이 강하거나 전통을 중시하는 분들에게는 저의 이런 글이 마음에 거리낌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거부감이 있을 때는 그 이유가 ‘내 마음에 맞지 않기 때문’인지‘성경에 맞지 않는 말을 하기 때문’ 인지를 분별하시며 앞으로도 보내드릴 저의 성경에 관한 글을 읽으실 때는 그렇게 해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