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William Shin
Sent: August 15, 2014
Subject: Fwd:바보같은 인생

 
      바보같은 人生  

 세계적인 바보(?) 프란치스코 교황님 방한을 환영합니다.

 푹푹찌는 가뭄 무더위를 식혀주는 장마 비를 맞으며 공원을 산책하면서 문득 가수 김도향님이 부른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라는 노래를 흥얼거려 보았습니다.

「어느 날 난 낙엽 지는 소리에 갑자기 텅 빈 내 마음을 보았죠./ 그냥 턱없이 흘려버린./ 그런 세월을 느낀 거죠/ 저~ 떨어지는 낙엽처럼/ 그렇게 살아온 인생을/ 저~ 흐르는 강물처럼/ 멋 없이 멋없이 살았죠./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늦어버린 것이 아닐까?/ 흘려버린 세월을 찾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좋을까~/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그러고 보면 夫子는 무척이나 바보처럼 살아온 것 같습니다. 남의 것을 거저
 빼앗을 줄 모르는 바보처럼, 배신도 모르는 바보 같이,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할 줄 모르는 바보처럼, 불의와 타협하지않고 정의 만을 주장하며, 인간다운 삶이 너무좋아 외곬으로 살아온 바보, 지금도 계속 바보처럼 살고 싶습니다. 바보는 짓밟히고 쓰러지고 휘둘리며 뒤쳐져도 바르게 일어섭니다. 맹한 바보는 그 자체가 자연적인 아름다움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평생을 바보같이 사셨던, 성산 장기려 박사(1911~1995)는 평생을 가난한 환자들에게 인술을 베푸느라 궁핍한 생활을 면치 못했습니다. 어느 해 정월 초하룻날 아침이었습니다. 그 집에 머물고 있던 제자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세배를 드렸습니다. 세배를 받은 성산은 덕담을 해주었습니다. “금년에는 나처럼 살아보게.” 깊은 감동을 받았지만 제자는 모르는 척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선생님처럼 살면 바보 되게요?” 성산은 껄껄 웃음을 그치고는 제자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습니다. “그렇지, 그러나 바보 소리 들으면 성공한 거야. 바보로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줄 아나?”

 오늘날 우리 사회는 너무 똑똑해서 손해를 보지 않고 자기 욕심만을 채우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이기적인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따듯한 인심이 매마른 각박한 세상이 되어갑니다. 그러나 우직한 바보들이 있으면, 사막의 오와시스에 사람들이 편안하게 모이게되며, 동시에 생동감을 얻어 자신있게 살아가게 됩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당신의 자화상에 붙인 이름이 <바보야>입니다. 2009년 2월 추기경께서 선종(善終)하시기 전에 모 언론사 취재진이 김수환추기경을 인터뷰한 바가 있었는데, 그 때 김수환 추기경이 당신의 자화상에 붙인 이름이 <바보야>였습니다. 그 그림을 보고 추기경에게 여쭈었는데, “왜? 자화상 밑에 ‘바보야’를 쓰셨습니까?” 바보 같지 않나요? "제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 났고, 크면 얼마나 크고,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안다고 나대고, 어디 가서 대접을 받기를 바라고 분별없이 행동하는 것이 바보지,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렇게 보면 내가 제일 바보 같이 산 것 같아요.”

 바보! 바보! 얼마나 정감 있고 깊이 있는 말입니까? 일본에서는 CEO에게 바보가 될 것을 주문한다고 합니다. 전문바보를 뜻하는 ‘센몬빠가(傳問馬鹿)’라는 말을 통해 바보의 장점을 원용한 직장인 리더십과 직장 문화가 독려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센몬빠가”는 한 분야에 바보스럽게 몰입하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바보래야 몰입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바보정신이 장인문화(匠人文化)에 기여하고, 기초과학의 기본이 되어 온 일본과, 이스라엘이 노벨상 수상자를 많이 탄생시킨 원천이라고 합니다.

 바보에게는 특별한 무엇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건 몰입(沒入)입니다. 그 몰입이 문제를 다 풀어주는 힘입니다. 바보 특유의 우둔(愚鈍)함이 어떤 폭풍에도 끄떡없는 방어벽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까닭 없이 함박웃음을 터트리는 단순 바보의 천성(天性)이 지복(至福)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노자(老子)께서 말씀 하십니다. “큰 지혜는 바보 같다.”

 어느 날 한 농부가 아내에게 제안을 합니다. “여보! 오늘 말을 가지고 나가서 좋은 것으로 바꿔올게.” 그러자 아내가 말합니다. “잘 생각했어요. 좋은 것으로 바꿔 오세요.” 이 농부가 말을 끌고 나갔습니다. 가는 길에 소를 끌고가는 사람을 만났는데, 소가 좋다는 그의 말만 듣고 이 농부는 말을 소와 바꿨습니다. 그리고 또 소를 끌고 가다가 양을 가진 사람과 만났습니다. 이번에도 그가 양을 자랑하니까 이 농부는 다시 소를 양과 바꿨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농부는 몸이 피곤해서 잠시 주막에 들렀습니다. 그때 마침 주막에서 쉬던 한 귀족이 이 농부의 이야기를 듣고 말 했습니다. “아마 당신 아내는 틀림없이 화를 낼 겁니다.” 그러자 농부가 말합니다. “아니에요, 제 아내는 틀림없이 ‘잘 했어요, 훌륭해요’라고 말할 겁니다.” 귀족이 말했습니다. “정말 그렇다면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이 자루의 금화를 다 주겠소.”

 마침내 이 바보같은 농부가 귀족과 함께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죽 설명을 했습니다. 아내가 그 말을 다 듣고 나서 “참 잘했어요, 훌륭해요.”라고 맞아주었습니다. 그 과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귀족이 말합니다. “이런 가정이라면 내 돈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다.” 그리고는 자루속의 금화를 그 바보에게 몽땅 내주고 돌아갔습니다.

 이와 같이 천진무구(天眞無垢)한 바보에게는 천록(天祿)이 내리는 법입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단 한 점의 사심(邪心)도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영악하고 똑똑한 사람도 사심이 가득한 사람에게는 천심의 도움이 내리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은 험난한 일생을 지내게 되는 것 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세상사는 이치일 것입니다. 바보 소리 듣고 살면 인생 성공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모두 좀 밑지며 삽시다. 소외된 이웃을 위해 조금씩 나누며 삽시다.

 조금 손해 보는 셈 치고 세상 사람을 위해 홍익인간(弘益人間) 사인여천(事人如天) 정신으로 善하게 살아 갑시다.  로마교황청  프란치스코 교황님 처럼.....

 

                                                                       夫子  이자현 拜